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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성공해도 대북 경제지원 어렵다"

북한 부패로 중국기업 철수 미국측 경제지원 시기상조 군사력 감축후 인프라 보상 김정은 비핵화 믿기 어려워 북한 비핵화에 미국이 상응할만한 보상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군사.안보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RAND Corporation)의 한반도 전문가 브루스 베넷(사진) 박사는 23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은 비핵화 조건으로 미국의 제재 해제뿐 아니라 경제지원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김정은이 대북투자를 원한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경제지원은 현실적으로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아산플래넘 2018 콘퍼런스 참석차 한국에 방문 중인 베넷 박사는 "성공적인 남북회담과 북.미회담 개최를 전제하더라도 경제지원은 시기상조"라면서 "그동안 다수의 중국 기업이 북한에 진출했으나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북한의 경영 환경이 매우 부패(very corrupt)했기 때문이다. 섣불리 경제지원 약속을 할 단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따른 대북제재 해제 방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선 비핵화-후 제재 완화'가 합당한 대처라는 것이다. 대신 그는 북한이 재래식 군사력을 감축할 때마다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는 방식 등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고려할만하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120만 명 규모의 북한 병력을 50만 명으로 줄일 경우 나머지 70만 명을 인프라 건축 인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한국 등이 도로포장 설비를 공급하면 추후 북한이 시장경제 체제로 점차 전환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베넷 박사는 백악관 주인이 기존 정치인과 판이하게 다른 '아웃사이더(outsider)' 출신이라는 점이 북.미회담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면서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선 "궁극적으로 믿기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과거 미 정부가 줄곧 북한정권에 속아왔다"면서 "현재 각종 제재로 인해 경제적 타격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미국이 24시간 북한의 핵개발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는 한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은 어떻게든 곤경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사람의 미사여구(rhetoric)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다음주 프랑스로 핵무기를 시험발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날 콘퍼런스에서 김정은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약속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핵무기 자체에 대한 국제사회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베넷 박사는 "북한이 주요 무기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다면 비핵화의 첫번째 발걸음이 될 것"이라며 "북한으로선 보유한 핵무기를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국제사회에 명확히 보여줄 수 있다. 또 한국과 미국엔 북한이 공개한 핵무기를 폐기함으로써 일부 핵무기에 대한 불가역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한편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그는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과 달리 평화협정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원용석 기자 [email protected]

2018-04-25

[남북정상회담 D-1] 공식환영식·만찬까지…김정은 국빈급 예우

청와대가 오는 27일(이하 한국시간)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땅을 밟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국빈에 준하는 예우를 할 전망이다. 분단 이후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방남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데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대한 전기가 될 이번 정상회담의 상대인 김 위원장에게 회담의 내용과는 별개로 손님을 맞는 예는 다하겠다는 뜻이다. 남북은 23일 정상회담을 위한 3차 의전·경호·보도 관련 실무회담에서 정상회담 당일인 27일 공식환영식과 환영 만찬을 열기로 하는 등 세부 일정에 합의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4일 기자들을 만나 김 위원장을 국빈으로 예우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경호나 의전, 경비 부담, 숙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통상적인 '국빈예우'와는 다를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들여서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이 국빈 자격으로 방남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북이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국빈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국빈 방문에는 공식환영식, 의장대 사열과 축하 예포, 국빈만찬 등 가장 높은 수준의 의전이 수반된다. 여기에 국빈이 이동할 때 붙는 사이드카나 거리에 걸리는 환영 깃발의 형태, 깃발이 걸리는 장소, 체재비나 차량 등과 관련한 별도의 기준도 마련돼 있다. 남북이 합의해 공개한 정상회담 일정 중 공식환영식과 환영 만찬이 들어있었던 만큼 김 위원장의 방남이 국빈 방문에 준할 것이라는 평가에는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국빈 방문 시 선보이는 의전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모두 제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일치기 회담인 만큼 별도의 숙소나 체재비를 제공할 필요가 없고 김 위원장이 오전부터 판문점에만 머무를 예정이어서 차량 등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정상외교에서 환영의 의미를 담은 의전인 의장대 사열 정도가 남는데 청와대는 의장대 사열이 진행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과 2007년 각각 방북 때 최고 수준의 예우를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전 대통령의 방북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나와 영접했고 인민군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의장대를 사열했다. 2007년에도 김정일 위원장은 환영식장인 평양 4·25문화회관 앞 광장에 먼저 도착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무개차를 타고 온 노 전 대통령을 직접 맞았다. 2000년과 마찬가지로 의장대 사열도 이뤄졌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보면 공식환영식이 마련된 이상 김정은 위원장 역시 우리 군을 사열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러나 남북의 특수관계를 고려했을 때 예포 발사나 양국의 국가 연주와 같은 의전은 생략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지난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 때도 북측은 예포 발사와 양국 국기 게양 등의 의전은 생략했다.

2018-04-24

[남북정상회담 D-1] 판문점 원조 협상가의 조언…"대화하되 압박은 계속"

정전협상 초대 대표 조이 제독 "공산 측 알아듣는 건 힘 뿐" "지키지 않을 약속 가급적 작게" 김정일 서울답방 합의 때 현실로 협상 주도하려 돌출사건 모의도 "말이나 약속 아닌 행동 믿어야" 고전(古典)에는 울림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상황과 조건이 어느 정도 바뀌어도 변치 않는 클래식의 매력이다. 그 속에는 감동이 있고 교훈이 있다. '전철을 밟지 말라'는 후세에 대한 애정 어린 권고도 담긴다. 65년 전 판문점에서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첫 협상대표 터너 조이(Turner Joy) 미 제독은 생생한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그 속에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을 통해 체득한 노하우와 경구가 빼곡하다. 반세기 넘은 시대 변화에도 공감할 대목이 적지 않다. 판문점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대통령과 참모·협상가들이 일별해 볼 만한 교범이다. "그들은 나중에 지키지 않으려고 작정한 약속을 가급적 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조이 제독(1895~1956)은 저서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에서 공산 측 협상 패턴의 핵심을 이렇게 짚어냈다. 협상이란 게 못마땅한 합의사항 몇 가지는 담길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공산 측은 어쩔 수 없이 합의는 하되, 뒷일을 치밀하게 고려한다는 얘기다. 조이 제독은 "그들은 합의사항을 위반할 경우 수반될 조사범위를 축소시키려 광분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군축 협상 등에서 효율적인 점검이나 감시체계를 공산 측이 받아들이지 않는 건 이런 음흉한 생각이 깔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비판 여론이나 제재 압박 때문에 마지못해 협상에 나섰던 북한의 행태를 반추해보면 기시감이 든다. 북·미 제네바 핵 합의(1994년)와 9·19 공동성명(2005년)의 합의 문구를 들춰보면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국제기구는 사찰과 검증 문제로 북한과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여야 했다. 핵 동결과 보상이란 주고받기 틀은 번번이 식량과 중유 지원 등의 당근만 따 먹는 북한에 농락당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은 대목은 대표적이다. 통일 문제와 이산상봉, 경협·교류 등 6·15 공동선언 5개 합의 항목을 만들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대목은 맨 끝부분에 별도 항목 없이 덧붙여졌다. 마지못해 합의문에 담긴 듯한 답방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후계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지역에서 회담을 치러 '서울 답방'에 갈음하려는 듯하다.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에 임하는 기본 자세에 대해 조이 제독은 "적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협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협상이 자유를 위해 공헌할 수 있을 때에만 나서라는 얘기다. 그는 또 "공산 측과 협상할 때 군사력의 위협카드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반대라는 주장이다. 조이 제독은 "그들은 엄포에 넘어가지 않는다. 막강한 군사력을 실제 사용하려는 자세를 취할 때 공산 측과의 협상은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이 제독은 정전협상에서 유엔군 측 초대 수석대표를 맡았다. 북한군 남일 대장과 이상조 소장, 중국 측 덩화 상장과 세팡 소장 같은 정치군인을 상대했다. 협상과 언술에 능한데다 기상천외의 꼼수까지 동원하는 공산 측과의 만남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조이 제독은 무용담이나 자기 자랑이 아닌 실패의 경험까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실제 조이 제독은 '전쟁에서 승리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수용한 것과 같은 정전은 없어야 한다"며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산 측은 가장 먼저 회담 장소 선정부터 전략적 판단을 한다. 정전 협상의 경우도 그랬다. 1951년 6월 20일 리지웨이 장군이 덴마크 병원선을 원산항에 정박시켜 협상장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지만, 돌아온 답은 "정전을 원한다면 개성으로 오라. 그러면 대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이 제독은 "유엔사가 휴전이 필요한 입장이라 굽신거리며 공산 측 거점에 찾아온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결국 개성에서 열린 회담장에 앉아보니 북한 측 남일 장군의 의자가 조이 제독의 것보다 4인치(10.16cm)나 높게 배치됐다. 유치한 듯한 이런 계략도 수없이 쌓이면 실질적 선전효과를 나타내게 된다는 게 조이 제독의 판단이다.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공산주의자들은 기필코 돌출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조이 제독은 간파했다. 그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해서 혹은 선전 목적에서 사건을 만든다"며 "결코 단순하게 발생하지 않으며 공산 측 협상팀에 의해 모의되고 촉발된다"고 설명했다. 협상을 지연시키는 게 상대를 궁지에 몰고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게 공산주의자들의 생각이라고 조이 제독은 말한다. 의견이 충돌하면 양보해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구 합리주의 사고를 파고든다는 것이다. 조이 제독은 "공산 측은 '2+2=6'이라고 제안하고는 합의를 끝없이 지연시킴으로써 우리가 '2+2=5'라는 절충안에 동의하도록 만든다"고 털어놨다.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반복해 상대의 진을 빼는 수법도 단골메뉴다. "물방울을 떨어트려 돌에 구멍을 내려는 그들의 시도가 목전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서방세계의 피곤함은 계속 남아있게 될 것"이란 게 조이 제독의 분석이다. 공산 측은 상대를 피로하게 만드는 전술이 완전한 협상실패보다는 낫다고 평가한다는 얘기다. 북한이 이미 합의하거나 문서화된 경우까지 부인하는 태도를 보이는 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은 문건 자체를 부정하기 어려울 경우 "당신의 해석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펼친다고 지적했다. 또 협정이 불리하다 판단되면 무효화 하는 전술도 구사한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와의 협정을 신뢰하는 사람은 낡은 동아줄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이나 약속이 아니라 행동만을 믿으라는 조언이다. 조이 제독은 정전협상의 교훈을 던졌다. 무엇보다 적이 정전(대화)을 청할 때 압력을 낮추지 말고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산 측 부대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패퇴하던 1951년 6월 유엔 측이 휴전을 타진한 건 실책이었다는 진단이다. 협상이 시작되자 유엔 측은 지상군 공세를 완화했다. 조이 제독은 "공격작전 압력을 최대한 증가시켰어야 한다. 공산 측이 진실로 알아듣는 논리는 오직 힘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과 협상을 벌여야 할 후세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얻은 경험을 마음속에 잘 기억해 둔다면, 자유세계와 독재세계의 차후 협상 시 미숙한 협상기술 때문에 소리도 없이 초래될 재앙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구원받을 것이다." 이영종·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

2018-04-24

판문점 원조 협상가의 조언…"대화하되 압박 늦추지 마라"

정전협상 초대 대표 조이 제독 "공산 측 알아듣는 건 힘 뿐" "지키지 않을 약속 가급적 작게" 김정일 서울답방 합의 때 현실로 협상 주도하려 돌출사건 모의도 "말이나 약속 아닌 행동 믿어야" 고전(古典)에는 울림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상황과 조건이 어느 정도 바뀌어도 변치 않는 클래식의 매력이다. 그 속에는 감동이 있고 교훈이 있다. '전철을 밟지 말라'는 후세에 대한 애정 어린 권고도 담긴다. 65년 전 판문점에서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첫 협상대표 터너 조이(Turner Joy) 미 제독은 생생한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그 속에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을 통해 체득한 노하우와 경구가 빼곡하다. 반세기 넘은 시대 변화에도 공감할 대목이 적지 않다. 판문점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대통령과 참모.협상가들이 일별해 볼 만한 교범이다. "그들은 나중에 지키지 않으려고 작정한 약속을 가급적 작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조이 제독(1895~1956)은 저서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에서 공산 측 협상 패턴의 핵심을 이렇게 짚어냈다. 협상이란 게 못마땅한 합의사항 몇 가지는 담길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공산 측은 어쩔 수 없이 합의는 하되, 뒷일을 치밀하게 고려한다는 얘기다. 조이 제독은 "그들은 합의사항을 위반할 경우 수반될 조사범위를 축소시키려 광분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군축 협상 등에서 효율적인 점검이나 감시체계를 공산 측이 받아들이지 않는 건 이런 음흉한 생각이 깔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비판 여론이나 제재 압박 때문에 마지못해 협상에 나섰던 북한의 행태를 반추해보면 기시감이 든다. 북.미 제네바 핵 합의(1994년)와 9.19 공동성명(2005년)의 합의 문구를 들춰보면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국제기구는 사찰과 검증 문제로 북한과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여야 했다. 핵 동결과 보상이란 주고받기 틀은 번번이 식량과 중유 지원 등의 당근만 따 먹는 북한에 농락당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은 대목은 대표적이다. 통일 문제와 이산상봉, 경협.교류 등 6.15 공동선언 5개 합의 항목을 만들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대목은 맨 끝부분에 별도 항목 없이 덧붙여졌다. 마지못해 합의문에 담긴 듯한 답방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후계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지역에서 회담을 치러 '서울 답방'에 갈음하려는 듯하다.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에 임하는 기본 자세에 대해 조이 제독은 "적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협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협상이 자유를 위해 공헌할 수 있을 때에만 나서라는 얘기다. 그는 또 "공산 측과 협상할 때 군사력의 위협카드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반대라는 주장이다. 조이 제독은 "그들은 엄포에 넘어가지 않는다. 막강한 군사력을 실제 사용하려는 자세를 취할 때 공산 측과의 협상은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이 제독은 정전협상에서 유엔군 측 초대 수석대표를 맡았다. 북한군 남일 대장과 이상조 소장, 중국 측 덩화 상장과 세팡 소장 같은 정치군인을 상대했다. 협상과 언술에 능한데다 기상천외의 꼼수까지 동원하는 공산 측과의 만남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조이 제독은 무용담이나 자기 자랑이 아닌 실패의 경험까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실제 조이 제독은 '전쟁에서 승리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수용한 것과 같은 정전은 없어야 한다"며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산측은 가장 먼저 회담 장소 선정부터 전략적 판단을 한다. 정전 협상의 경우도 그랬다. 1951년 6월 20일 리지웨이 장군이 덴마크 병원선을 원산항에 정박시켜 협상장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지만, 돌아온 답은 "정전을 원한다면 개성으로 오라. 그러면 대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이 제독은 "유엔사가 휴전이 필요한 입장이라 굽신거리며 공산 측 거점에 찾아온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결국 개성에서 열린 회담장에 앉아보니 북한 측 남일 장군의 의자가 조이 제독의 것보다 4인치(10.16cm)나 높게 배치됐다. 유치한 듯한 이런 계략도 수없이 쌓이면 실질적 선전효과를 나타내게 된다는 게 조이 제독의 판단이다.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공산주의자들은 기필코 돌출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조이 제독은 간파했다. 그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해서 혹은 선전 목적에서 사건을 만든다"며 "결코 단순하게 발생하지 않으며 공산 측 협상팀에 의해 모의되고 촉발된다"고 설명했다. 협상을 지연시키는 게 상대를 궁지에 몰고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게 공산주의자들의 생각이라고 조이 제독은 말한다. 의견이 충돌하면 양보해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구 합리주의 사고를 파고든다는 것이다. 조이 제독은 "공산 측은 '2+2=6'이라고 제안하고는 합의를 끝없이 지연시킴으로써 우리가 '2+2=5'라는 절충안에 동의하도록 만든다"고 털어놨다.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반복해 상대의 진을 빼는 수법도 단골메뉴다. "물방울을 떨어트려 돌에 구멍을 내려는 그들의 시도가 목전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서방세계의 피곤함은 계속 남아있게 될 것"이란 게 조이 제독의 분석이다. 공산 측은 상대를 피로하게 만드는 전술이 완전한 협상실패보다는 낫다고 평가한다는 얘기다 북한이 이미 합의하거나 문서화된 경우까지 부인하는 태도를 보이는 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은 문건 자체를 부정하기 어려울 경우 "당신의 해석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펼친다고 지적했다. 또 협정이 불리하다 판단되면 무효화 하는 전술도 구사한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와의 협정을 신뢰하는 사람은 낡은 동아줄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이나 약속이 아니라 행동만을 믿으라는 조언이다. 조이 제독은 정전협상의 교훈을 던졌다. 무엇보다 적이 정전(대화)을 청할 때 압력을 낮추지 말고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산 측 부대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패퇴하던 1951년 6월 유엔 측이 휴전을 타진한 건 실책이었다는 진단이다. 협상이 시작되자 유엔 측은 지상군 공세를 완화했다. 조이 제독은 "공격작전 압력을 최대한 증가시켰어야 한다. 공산 측이 진실로 알아듣는 논리는 오직 힘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과 협상을 벌여야 할 후세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얻은 경험을 마음속에 잘 기억해 둔다면, 자유세계와 독재세계의 차후 협상 시 미숙한 협상기술 때문에 소리도 없이 초래될 재앙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구원받을 것이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201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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